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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같은 반에 ADHD 치료를 받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지요. 아들의 합기도 끈을 책상 위에 올려뒀던 날, 그 아이가 그것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결국 버려버렸습니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태도였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났고, 그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했을 때는 하도 그런 전화를 많이 받았는지 건성으로 “미안하다”는 말만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질환과 관련된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그 아이의 행동이 단순한 ‘버릇없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는 용서와 다르지만, 이제는 조금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나도… ADHD의 증상을 겪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날 저녁,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은 무척 속상해했습니다. 잃어버린 합기도 끈보다도, 그 아이가 보여준 무관심과 무책임한 행동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그 친구는 왜 항상 그렇게 행동해?"라고 물었고, 저도 답을 해주지 못한 채 그저 아이를 다독이기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아이와 함께 감정과 행동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ADHD, 나의 이야기일지도 몰라
ADHD는 단지 어린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릴 적에 진단받지 못했더라도 성인이 되어서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죠. 어릴 때부터 자꾸 멍하게 되는 나, 집중이 안 되고 일의 마무리가 늘 어려웠던 나, 과제나 업무를 미루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나. 이런 행동들이 단순히 ‘게으름’이라 여겨졌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사실 ADHD의 전형적인 증상이었습니다.
ADHD는 크게 세 가지 핵심 증상으로 나뉘어요. 바로 주의력 부족, 과잉 행동, 충동성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아이는 이 3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던 거 같고요. 이 세 가지가 한 번에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일부만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의력 부족은 일을 시작해도 마무리하지 못하거나, 자주 멍해지는 특징이 있어요. 과잉 행동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충동성은 누군가 말을 마치기 전에 끼어들거나, 참지 못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죠.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증상을 단순히 ‘성격’으로 치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단이 늦어지거나 아예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저 역시 “왜 나는 늘 이런 식일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뒤늦게서야 ADHD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성격이 아니라 신경의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ADHD를 단순히 ‘성격’ 문제로 오해합니다. “산만한 아이”, “덜렁대는 사람”, “집중 못 하는 사람”이라는 말들 속에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상처 줄 수 있는 시선이 담겨 있지요. 하지만 ADHD는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불균형과 관련된 신경생물학적 장애입니다. 즉, 뇌의 기능 문제이며, 당사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의지나 성격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물적 치료가 효과적인 접근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주변의 기대에 맞추려 애쓰는 사람일수록 더 깊은 좌절과 자책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 역시 어릴 때부터 주의가 산만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반복되는 실수와 집중력 부족으로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워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이 모든 것이 '게으름'이나 '무책임함'이 아닌 ADHD 특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제 마음은 조금 놓였습니다.
ADHD는 나의 의지가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뇌가 외부 자극을 필터링하고 조절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자체가 자기 이해의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해는 스스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만들었고, 주변 사람들의 행동도 이전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ADHD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ADHD를 의심하게 되었다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심리상담센터, 또는 임상심리사는 정확한 진단과 상담을 도와줄 수 있어요. 치료는 반드시 약물만 있는 게 아니라, 비약물적 치료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꼭 말하고 싶어요. '정말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는 것을요. 정신과 진료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친 신뢰와 공감이 치료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에요. 이건 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에요. 특히 첫 상담에서 설문지나 검사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그 과정 자체가 지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데 만약 그 병원이 나와 맞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그 많은 검사와 절차를 또 반복해야 하죠. 이게 생각보다 꽤 큰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단 내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하루 계획표를 작게라도 세워보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커피를 마시는 시간, 산책하는 시간처럼 자잘한 루틴을 정해놓고 실천해 보니, 생각보다 성취감이 쌓이더라고요. 물론 실수할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자신을 탓하지 않고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ADHD는 변화에 약하지만, 동시에 작은 변화로 큰 힘을 낼 수 있는 특성도 있더라고요.
ADHD는 ‘관리’할 수 있는 장애입니다. 규칙적인 생활습관은 증상 개선에 큰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유산소 운동은 집중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데 도움을 줘요. 오메가-3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 그리고 일정한 수면 리듬은 뇌 기능을 안정시켜 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을 받아들이고 꾸준히 실천하는 태도입니다. 요가, 명상, 호흡 훈련 같은 활동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는 연습도 좋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관리’는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되는 실천에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든, 어떤 경험을 했든— ADHD는 함께 알아가고, 함께 극복해갈 수 있는 주제입니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주변을 이해하는 길. 그 출발점이 바로 오늘일지도 몰라요.